기도나 의식 중에 내 의식이 깊이 전환되는 순간이 있다.
고요하지만 힘이 있다. 몸은 이완되어 있는데 의식은 예리하다. 나는 지금까지 그 상태를 ‘존’이나 ‘변성의식’이라는 말로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면의 감각이었다.
이번에 의사에게 뇌파와 자율신경 데이터를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오간 20분간의 대화는 과학이 나의 감각을 증명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감각에 측정이라는 또 다른 각도에서 윤곽이 주어진 기록이다.
“양쪽이 동조하고 있다”
녹음이 시작되자 데이터를 본 의사는 ‘코히어런스’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서 양쪽 뇌파가 동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자율신경 표시에 관해서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모두 올라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교감신경은 활동이나 긴장, 부교감신경은 휴식이나 회복과 연결해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그 자리에서는 둘 다 높은 상태를 “이완되어 있으면서 집중하고 있다”, “존 상태에 들어가는 방법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고요하지만 힘이 있다.
쉬고 있지만 깨어 있다.
내가 내면에서 느끼고 있던 것과 그 말이 겹쳤다.
측정된 것과 측정되지 않은 것
중요한 것은 이 측정만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화 중에도 나는 “자율신경과 뇌파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작은 일부다”라고 말했다. 다만 뇌파와 자율신경은 일반인이나 의료·과학에 관여하는 사람들과도 공유하기 쉬운 언어가 된다.
이번 장비로는 우리가 관심을 두었던 감마파까지 측정할 수 없었다. 감마파와 기도나 명상을 둘러싼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그것은 측정 결과가 아니라 대화 속에서 생겨난 가설이다.
측정 중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시작한 지 몇 분 뒤에 어떤 상태로 들어갔는지에 관한 기록도 하지 않았다. 조건을 통제한 연구가 아니라 한 번의 측정과 대화다. 이 점은 모호하게 만들지 않고 남겨두고 싶다.
AI 해석
그 자리에서 AI에게도 읽혀 보았다
대화 도중 측정 내용을 그 자리에서 AI에 입력해 보기로 했다. 후반부에 낭독된 자세한 ‘세 가지 특징’은 의사가 독립적으로 작성한 공식 진단문이 아니라, AI가 데이터 설명을 바탕으로 생성한 해석이었다.
- 01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동시에 높게 나타난 점
- 02
각성과 관련된 대역을 유지하면서 세타파와 델타파 같은 깊은 상태와 관련된 대역도 보인 점
- 03
깊은 상태에 들어가도 전체 에너지 지표가 크게 무너지지 않은 점
AI는 이를 각성과 깊은 변성의식을 전환하는 ‘통합 패턴’으로 읽었다.
이 해석은 흥미롭다. 다만 AI의 글은 의사의 진단도, 학술적 결론도 아니다. 데이터를 어떻게 읽을지에 관한 가설로서 의사의 직접 관찰과 구분하여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도 내가 기뻤던 이유
대화 중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존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
— 20분간의 대화에서
조금 증명된 것이
기쁩니다.
지금이라면 ‘증명’이라는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증명되었다기보다 내가 오랫동안 몸으로 익혀 온 상태에 측정 가능한 변화가 동반될 가능성이 보였다. 그것이 기뻤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선택받은 사람만의 능력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많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도, 호흡, 명상, 소리, 장을 만드는 것. 세계의 전통문화가 길러 온 지혜를 신비 속에만 가두지 않고, 측정할 수 있는 부분부터 세심하게 살펴보고 싶다.
다음에는 ‘재현할 수 있는 기록’으로
다음에 측정한다면 의식이나 호흡을 시작한 시각, 의식이 전환되었다고 느낀 순간, 소리와 기도의 정점을 같은 시간축에 기록하고 싶다. 안정 시와의 비교, 여러 차례의 측정, 실시간 변화, 측정 장비가 다룰 수 있는 주파수 대역도 확인한다.
한 번의 인상적인 그래프를 이야기만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다.
기도의 의미를 숫자만으로 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숫자는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다리가 될 수 있다.
이번에 발견한 것은 답이 아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것과 밖에서 측정된 것.
그 둘이 처음으로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